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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농회명 : 여래(如來)

현 검단초등학교의 소재지이자 지난날 면사무소와 경찰지서가 있었던 곳이다. 전래되어 온 명칭은 ‘여리’였고 지금도 토박이 노인들은 그렇게 부른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이 곳을 지나던 풍수쟁이가 마을 이름을 ‘여래’로 고치면 번영하리라 하여 그렇게 고쳤다고 하고, 혹은 옛날 마을에 마음씨 착하고 적선을 잘하던 스님이 살았는데 그를 기리기 위해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농회명 : 가현(歌絃)

검단지역의 가장 큰 산인 가현산(해발 215m)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옛날에는 ‘간약골’로 불렀는데 마을 뒤에 가현산이 앉아 있어서 그렇게 바뀌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단순하지가 않다. 가현산의 옛 이름은 가린산이었고 그래서 가린골이라고 불렀는데 음운이 변화하여 가련골로, 가련골이 다시 간약골로 바뀌었다. 국어 고어에서 ‘갈’은 크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으므로 가린골은 큰 골이 있는 산, 가린골은 큰 골, 즉 큰 골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다가 각종 지리서에 그 가린산이 가현산으로 기록되면서 마을이름도 가현으로 비롯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검단의 토박이 노인들은 자을 간약골이라고 부른다.

영농회명 : 원현(院峴)

오늘날의 검단사거리이다. 원현은 역원이 있던 마을이라는 의미이다. 역원이란 조선 초기 국가가 역마가 달리는 역로의 인가가 드문 지역에 여관을 열어 쉬어가게 하는 시설이었다. 이곳에 역원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원터’라고 구전되어온 것도 있다. 그리고 기와 조각이 발견되기도 하거니와 고을 사또가 이곳에서 묵을 때 정조를 지키다가 죽은 처녀의 혼령이 나타나 신원(伸寃)을 해 주었고 정조문(貞操門)을 세워 주었다는 전설도 있다.

영농회명 : 능내(陵內) 

전래된 지명은 능안이다. ‘능안’이라는 지명은 왕이나 왕족이 능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지명으로 전국에 수많은 곳에 같은 지명이 있다. 이 마을 골짜기 안에는 2기(基)의 고분이 있었고 그중 하나가 ‘강릉’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변에는 망부석 등 석물들이 땅속에 묻혀 있다.

영농회명 : 완정(完井)

토박이들이 부르는 지명은 ‘완재이’. ‘완쟁이’이다. 전설로는 이 마을의 우물의 물맛이 좋아 ‘완전한 우물’이라는 뜻으로 붙였다는데 그런 우물이 없으니 근거가 약하다. ‘완정리(完丁里)’라고 쓴 기록도 보이는데 ‘완전한 장정’이라는 의미로 추론이 된다. 그러나 고어에서 정(井, 丁, 亭)이 마을 이름을 짓기 위해 단순히 사용한 경우가 많으므로 분명하게 짚어 설명하기는 어렵다.

영농회명 : 청마(靑麻)

마전의 어원이 되는 삼바지 마을이다. 예전부터 어저귀(삼)를 많이 재배해왔기 때문에 ‘삼밭이’로 써오던 것이 ‘삼바지’가 되었다고 전한다. 또 다른 설로는 마을에서 삼을 많이 재배하였고, 마을 주위가 좌청룡 우백호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 마을이 청룡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청마’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영농회명 : 문현

고종 8년(1871) 간행된 『김포군읍지』의 기록에는 ‘역원무(驛院無)’라고 되어있으나 조정에 올린 지도에는 검단면지역에 ‘과일원(過逸院)’이라 적어 넣었다. 이에 광인원, 과일원의 일치여부는 증명할 수 없지만 지명에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원(院)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곳은 현재 검단사거리로 여래로 넘어간 고개도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보통 “문고개”라 부르는 완정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임진왜란(1592)때 적을 무찌르던 성문의 역할을 했다고 전해온다.

영농회명 : 방현

방현은 ‘원너머’라고도 하는데 검단사거리에서 가현마을로 넘어가는 고개 우측 현 아파트단지를 말하며, 원의 뒤쪽 너머이기 때문에 ‘원너모’라고도 한다. 지금은 신촌사료공장이 없어졌지만 예전에 이곳 뒤편을 ‘원너머’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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